깊은 골짜기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행여를 놓아두는 행여터가 있다.

마을 어느 한 사람이 죽으면 집안에서 장례를 치른 후 지게에 행상(行喪)을 꾸려 관을 지고 무덤까지 모시는 장례절차를 밟는 것인데 이는 집집마다 장례를 위해 이를 만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장례라는 풍습이 오늘날과는 사뭇 다른 한 가족만의 일이 아닌 마을 사람들 전체가 함께하는 의식, 아픔을 함께하고 서로 돕는 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이때 행여를 짊어지는 사람들도 흠이 없는 사람들을 골랐다고 한다. 아이를 많이 낳은 사람, 금실이 좋은 사람, 건강한 사람.. 옛말에 고인이 행여꾼들 중 한명을 데리고 간다는 속설로 인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고인의 가족들은 이런 행여놀이. 행여를 지고 무덤으로 가는 길에 행여꾼들이 소리를 내어 상여가를 부르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영적인 행위를 하는 놀이 중간중간에 노자돈을 행여에 꽂아 고인의 가는 길을 닦아 드리기도 했단다. 행여꾼들에게는 장례가 끝난 후 수건과 신발 한 켤레를 드리는 인사를 하였고 행여꾼들은 지친 몸을 씻고 행여에 꽂아 두었던 노자돈으로 거하게 술한잔 하며 다시 고인의 떠올릴 것이다.

엄마는 엄마의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기억하고 계셨다.

어릴 적 엄마는 사마귀로 고생을 하셨는데 장례 제사에 사용한 대추를 먹으면 낫는다는 소리를 듣고 여자들은 참가 할 수 없는 장례풍습 때문에 두어살 위인 사촌오빠에게 대추를 꼭 가지고 오라는 부탁을 하셨다 했다. 오빠는 제가 끝나자 마자 대추사발을 엎어 대추를 들고 뛰었고 정말 감쪽같이 엄마의 사마귀는 사라졌다 했다.

탕탕탕!!!

엄마 외할머니의 곰방대 부딪치는 소리.

외할아버지의 깊고 오랜 병환으로 외할머니는 자식고생 그만 시키고 가지 안간다며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을 곰방대 탕탕탕으로 표현하셨다 했다. 그 소리는 지금도 선명하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멀리 나가는 상여를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문지방에 발끝으로 서서 관세음보살을 외시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오리며 부부가 무엇일까라고 나에게 물으신다.

엄마는 엄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죽음은 돌고 돌아 다시 몇해 전 돌아가신 엄마에게 왔다.

 

동생 꿈엔 다녀가시고 엄마 꿈엔 안오신다고.